영화 <괴담> 포스터

 최근 일본 영화계가 과거 명성에 비해 다소 주춤하기는 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세계에서 손꼽히는 영화 강국입니다. 일본 영화계는 영화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졌던 1930년대를 거쳐 전후 찬란한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특히 1950년에서 60년대에 만들어진 일본 영화는 세계의 그 어떤 영화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며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오늘 소개할 코바야시 마사키 감독의 <괴담>도 이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괴담>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공포보다는 이야기 자체가 주는 서늘하고도 독특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영화는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기이한 전설을 전해 듣는 느낌을 줍니다. 영화는 <흑발>, <설녀>, <귀 없는 호이치>, <찻잔 속에> 등 네 개의 단편 영화를 묶은 옴니버스식 구성입니다. 이야기들은 서로 독립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순서대로 감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만큼 네 단편들은 각자 개성이 뚜렷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흑발>은 출세를 갈망하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를 남편이 다시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설녀>는 설녀를 만났던 남자가 금기를 어겨 결국 아내를 잃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는 <귀 없는 호이치>로, 귀신에게서 벗어나려는 눈먼 악사가 등장합니다. <찻잔 속에>는 무사의 찻잔에 괴이한 존재가 보인다는 내용입니다. 영화의 분위기는 매우 기이하지만, 비교적 우리에게 친숙한 이야기를 다룬 내용도 있기에 낯설지는 않습니다.

영화 <괴담> 스틸컷

 영화는 약 50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뛰어난 영상미를 자랑합니다. 물속에 잉크가 퍼져 나가는 이미지를 배경으로 하나씩 이야기의 제목을 소개하는 오프닝 신은 매우 감각적입니다. <괴담>에는 각 이야기마다 대표적인 이미지가 있습니다. <흑발>에서는 뱀처럼 기어가 남편을 저주하는 아내의 머리카락, <설녀>에서는 아내가 남긴 신발의 붉은 끈이 눈보라 속에서 사라지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귀 없는 호이치>에서는 귀신을 피하기 위해 글자를 얼굴과 몸에 그려 넣는 악사, <찻잔 속에>는 찻잔 속에 담긴 이미지가 보는 이에게 선명하게 각인됩니다.

영화 <괴담> 스틸컷

 이야기의 내용으로만 본다면 다소 심심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수작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영상 언어를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이야기에 맞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구도, 인공 세트는 이미지를 명확히 구현합니다. <흑발>은 폐허로 바뀌어 버린 집과 머리카락만 남은 아내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설녀>에서는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주인공이 길을 잃고 설녀와 마주하게 되는 장면을 인공 세트를 활용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빚어냅니다. <귀 없는 호이치>는 해상 전투를 그린 옛 그림과 음악, 거대한 무대와도 같은 세트를 활용해 꿈과 현실의 경계를 교란하며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찻잔 속에>는 찻잔과 그 속에 담긴 정체불명의 사내의 모습이 시선을 끕니다.

 <괴담>은 고바야사 감독의 훌륭한 연출력을 인정받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한 작품입니다. 이 한 작품만으로도 당시 일본 감독들의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 시기의 일본 영화계가 너무나 찬란했던 탓일까요? 최근 일본 영화계에서는 이토록 풍부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화를 찾아보기는 힘든 것 같아 현재 일본 영화계의 부진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만큼 <괴담>은 잘 만들어진 작품이며, 특히 비주얼적인 면에서 흔치 않은 작품입니다. 이미지가 주는 서늘함, 시각 언어로 전달하는 독특한 감각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괴담>을 추천합니다.